성숙한 개구리만이 할 수 있는 것

 

군대의 병영문화를 겪으면서 희미하게 피어올랐던 생각이

2007년 12월 대선때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매선거때마다 점점 구체화 되었고,

Brexit를 겪으면서 꼭 남겨야 겠다는 생각으로 굳어 졌지만, 매번, 어떻게 남겨야 잘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하곤 했지만…

이번 탄핵을 통해 반드시 남겨야 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

Itisoldcow’snotionthatsheneverwasacalf. – 송아지였던 적을 모르는 암소의 생각이다.(프랑스)

好了疮疤忘了痛 – 종기가 낫자 아팠던 기억일 잃어버린다.(중국)

한때를 잊어 버리는 것을 지적하는 속담은 전세계적으로 존재한다.

이 문제에 대한 인지는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위 표는 Brexit 찬/반 연령대 비율이다.

우리나라의 선거때와 완전히 일치한다.

본격적으로 내 주장을 말하기에 앞서서, 내가 이런 글을 남기고자 함은 10년뒤, 20년뒤, 30년뒤에 다시한번 읽어보고 스스로 깨어나기 위한 목적임을 미리 밝혀둔다.

또 한가지,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함은 논리적인 비약이 다수 존재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노년층의 생각은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Brexit를 예로 단순하게 한번 따져보자

Brexit를 하게 되면 미래에 누가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인지?

남은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노년층에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 앞으로도 더 많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젊은층에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것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젊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비약해서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의 인생이 100살로 한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20세는 80년을 내다볼 것이고, 60세는 40년만 내다 보지 않을까?

나이가 먹을 수록 점점 변화가 두렵고, 안정적인 보수가 되고 싶어하고, 그저 남은 여생 편안히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젊었을때를 생각해보고 최소한 그들에게 암울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올챙이가 개구리적을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개구리는 올챙이적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잊어버리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정말 성숙한 개구리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지금의 나는 30대 중반으로 젊은층에 속한다. 따라서 내가 개구리는 모르기 때문에 이런말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면서의 과정만큼은 느껴봤기 때문에 남은 미래도 어느정도는 예측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본다.)

문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속도는 과거의 10년보다 현재의 10년이 훨씬 빠르게 변화했으며, 미래의 10년은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빠른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30대인 내가 20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의 20대때를 대입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겪었던 시기와 지금은 굉장히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20대를 핵심세대라고 가정했을때, 40대, 50대가 될 수록 20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아마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내가 다 겪어 보았기 때문에 젊었을때의 혈기를 잘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한 문제들도 잘 알고 있고, 이러이러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꽉막힌 노인의 답답함…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꽉막힌 사람이 내가 될지도 모르는 것만 빼고는…

그럼 이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핵심세대(20대?)이 주장하는 것을 귀기울여 들어주어야지..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사실과 같이 정확한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닌 어떤 사회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 등은 모두 각자의 주장이 있을 뿐이며, 젊은 사람은 주장 할 수 있고, 노년층은 주장하면 안된다는 소리도 절대로 아니다. 서로간의 주장과 설득, 존중을 통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소리이다. 이 소통이라는 과정을 통해 세대간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세대차이도 극복할 수 있는 상호 소통이 잘되는 사회라면 위의 그래프와 같이 세대별로 성향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올챙이가 아닌, 성숙한 개구리의 역할일 것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잊지말고… 기억하려고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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